거제와 통영의 봄

사촌형이 거제 마리나리조트를 매우 저렴한 가격에 예약해 오랜만에 두 가족이 뭉쳤습니다. 순서와 절차 그리고 계획을 중요하게 여기는 집사람의 명을 받아 2박 3일 초보 가이드가 되어 최소한의 동선으로 최대한의 볼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코스를 잡았습니다. 참고로 이번 여행의 특징은 No 팁, No 옵션, No 쇼핑입니다.


차로 4시간 달려 구조라 유람선 터미널 도착 형네 식구와 접선.... 사전 예매하면 할인이 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매표소 직원이 보는 앞에서 인터넷 예매를 하는 만행을 저질렸네요.



금강산도 식후경.... 국물 베이스가 다소 의심스러운 해물 칼국수 한 그릇 급하게 말아먹고...



드디어 승선...

정원 96명, 현재 인원 94명...



오늘 날씨 완전 폭삭 망했네요. 오락가락하는 비와 몰아치는 강풍, 쌀쌀한 기온은 초여름인데 뜨끈한 아랫목이 생각나게 합니다.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캡틴의 안내방송과 김 여사, 김 아저씨의 수다가 엇박자를 내니 정신이 항개도 없습니다.



외도 도착...



뭔가 슬슬 멋진 풍광이 펼쳐지려고 합니다.



현금 천 원짜리 지갑을 주워 관리 사무실에 맡겨 놓고...



이국적인 시크릿 가든 투어를 나섭니다.



외도는 1969년부터 이창호, 최호숙 부부가 45여 년간 가꾸어 희귀 아열대 식물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1,000여 종이 넘는 식물이 자라고 있답니다.



멀리서 보기에는 하나의 섬 같지만, 동도와 서도로 나누어져 있으며 서도엔 약 만여 평 가량의 식물원과 편의 시설이 조성되어 있고 동도는 현재 자연 생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답니다.



서도 전망대에서 바라 본 동도의 모습....



나도 언젠가는 골치 아프고 따지기 좋아하고 계산적인 세상을 벗어나 어릴적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맨몸으로 일군 과수원을 물려받겠지만...



과연 지금의 규모를 유지할 수나 있을는지....



나도 아버지만큼 부지런 할 수 있을는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람선은 바쁘게 여행객을 실어 나르는 군요.



외도 관광을 마치고... 사촌 형이 예약한 이틀 묵을 숙소의 칠성급 전망을 보장하는 객실을 배정받은 후...



다음 여행지인 거제도포로수용소 입장...



6.25 전쟁과 관련된 중요한 인물을 좌우로 나눠놓았습니다. 초딩적 시각으로 보면 왼쪽은 나쁜놈, 오른쪽은 우리 편..



디오라마관은 거제도포로수용소의 배치상황, 생활상, 폭동현장을 생생하게 재현 해 놓았습니다. 참고로 디오라마란 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하여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기법입니다.



일정 거리까지는 조형물로 그 이후는 그림으로 구성해 놓았는데 마치 눈앞에 360만 평 거거제도포로수용소를 실제로 보는 듯 현실감과 긴장감이 있네요.



당시 포로들은 포로의 대우에 관한 조약인 제네바 협약 때문에 전쟁 병사보다 더 대우가 좋았다고 합니다.



오로지 하나의 이념으로 똘똘 뭉쳐 민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눴던 포로들은 송환 문제를 놓고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로 갈려 대립하였으며 수용소장 도드준장을 납치하는 이른바 거제도포로소요사건을 일으켜 한 달이 지나 무력으로 진압되었습니다.



수용소에서 벌어졌던 친 공포로 들의 폭동과 친공, 반공 포로들 간의 격돌장면이 최첨단 복합연출기법으로 재현되어 긴박감과 위기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네요.



한 시간 간격으로 상영하는 4D 영화관은 3D 영사기에 문제가 있어 긴장감이 떨어지기는 하나 폭탄이 터질 때나 탱크가 지나갈 때마다 그 충격과 진동이 의자로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너무 피곤해 꾸벅꾸벅 졸 때마다 어김없이 의자를 흔들어 깨우더군요.



끊어진 대동강 철교를 건네는 피난민들... 처절한 전쟁과 피로 물든 투쟁, 어이없는 희생이 굵직한 역사를 이루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역사가 유독 많은 듯...  



서울 수복....



문명이 어마무지 발전한 것 같은데 주요 생필품은 지금과 별로 다른 게 없네요.



2,000원짜리 스크린 사격장은 영점조절을 하지도 않았는데 막 갈겨도 백발백중... 2,000원에 500원짜리 인형 하나만 줬더라면 지갑 다 털렸을 듯...



별 기대 안 했는데 매우 흥미진지하게 관람했습니다.



미리 예약을 하고 차로 한 시간 달려 도착한 통영의 어느 해물 뚝배기 식당...



된장을 풀어 시원하고 구수했던 해물 뚝배기...



우주 최강이라는 통영 멍게는 비린 거 못 먹는 초딩 입맛이라 별로였지만, 바닷내가 솔솔 풍기는 뱅어회와 숭어회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매콤새콤달콤 술을 부르는 향긋한 멸치회... 이제껏 극찬을 하고 먹었던 동네 횟집 멸치회는 그냥 음식물 쓰레기였네요.



노릇하게 구운 고등어 맛없는 부위는 조카에게 양보하고 고갈비부터 공략... 파라냐가 물어뜯은 것처럼 구석구석 알뜰이 발라 먹었습니다.



젊었을 땐 맵지 않으면 무조껀 맛 없는 음식으로 분류하고 매운 것 만 골라 먹었는데 이제는 손톱만 한 청양고추에 땀이 비 듯 흐르네요.



옆자리 새파란 놈이 술에 취해 진상 떠는 게 보기 싫어 급하게 식당을 나왔는데 숙소에 도착하고 보니 핸드폰을 두고 와 술 마실 귀중한 한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집사람이 사촌 형과 내가 이틀 마실 술을 준비했는데 왠지 모자랄 것 같기도 하고 적당할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네요.




일단은 건배...



거제에서 첫날밤이 깊어갑니다. 쌀쌀한 날씨에 비까지 맞은 집사람은 저녁 먹고 바로 실신... 장시간 운전에 지친 나와 사촌형은 평소 주량의 반도 못 마시고 떡 실신...



거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부지런한 사촌 형이 일출시간을 딱 맞춰 깨웠네요.



물놀이장은 성급한 아이들 맞을 준비로 분주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요트는 여유롭지만...



어부는 벌써 새벽 조업을 마치고 항구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일출 보고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떡 실신...



대충 아침 해 먹고 항개도 모르는 초보 가이드가 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려고 서둘러 숙소를 나섭니다. 조선업이 한창 호황일 때 거제에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젠 옛말이 되어 버렸네요. 다시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찾을 수 있을는지...



주말이면 길게 줄을 서야 탈 수 있다는 한려수도케이블카...



자연훼손을 최소화 하기 위해 중간 지주는 한 개만 설치했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림과 떨림이 적네요.



미륵도 가운데 쏟은 미륵산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바다 건너편 통영시내와 미륵도 주변에 자리 잡은 중·소 조선소와 한려수도의 다도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나무계단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미륵산 정상입니다.



이른 시간이라 한산하네요. 



통영과 미륵도는 충무교와 통영대교, 두 개의 다리와 일본강점기 때 건설한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큰 섬이 거제도입니다.



평소 떡, 빵 같은 거 잘 안 먹는데 통영 명물 꿀빵은 달달한 게 무척 맛있네요.



통영은 소설 토지를 쓰신 박경리 선생이 태어난 곳이자 묻힌 곳입니다.



선생께서 쓰시던 유품을 전시해 놓았네요.



등장 배우들의 젊은 모습이 낯 익은 걸 보니 내가 아재인 건 확실하데 이런 드라마가 방영 되었다는 건 오늘 알았습니다.



운전을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집사람이 지도를 꼼꼼이 확인합니다.



점심 때가 지나 달아전망대는 건성으로 둘러보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주문한 성개 비빔밥과 성의 없는 반찬은 맛도 양도 무척 섭섭했습니다.



오후 일정도 빡셉니다.



얼굴 안 나오는 셀카 한 방 찍고...



초·중딩 현장학습 나온 자세로 진지해 보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못 가 집중력과 기력이 떨어져 사촌형과 전시관 구석 의자에 누워 떡 실신...



수산과학관을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지척에 통영 케이블카 상부역사가 보입니다.



미륵산 자락에 자리잡은 미래사 앞 편백나무 숲길은 느긋한 걸음으로 왕복 30분 남짓 짧지만, 여행객의 지친 심신을 치유하긴엔 충분한 거리네요.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관광지인 삼도수군통제영 도착했습니다.



통영의 봄이 그야말로 막바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삼도수군통제영은 경상, 전라, 충청도의 삼도수군을 지휘·총괄하였던 본영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해군본부 같은 곳이며 초대 통제사가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입니다.



"하늘의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낸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세병관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산도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이 육지인 통영으로 옮겨오면서 지어진 객사건물입니다.



조선시대 군영과 읍성에는 공방이 있어 군수품과 진상품 등을 조달하는 조직적인 공발체제가 갖추어져 있었는데 당시 통제영엔 열두 공방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요 물품을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오늘은 갓을 만드는 입자방과



장롱이나 가구, 문방구 등을 만드는 소목방 장인이 휴일 특근 중입니다.



그게 들어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저녁에 먹을 걸 사려고 통영중앙시장에 들렀는데 인산인해...



종류도 다양 가격도 다양...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흥정해 봤자 거기 서 거기...



결정장애 앓을 거 없이 광어, 숭어, 참돔에 갑오징어 한마리 추가...



안 사 왔으면 서운했을 충무김밥...



회는 바로 잡아 먹는 것 보다 한시간 정도 숙성해 먹으니 식감이 한 층 더 부드럽네요.



초보 야매 가이드가 짠 빡빡한 일정 때문에 여행객 모두 초저녁에 떡 실신...



다 재워 놓고 혼자 좋아하는 노래 틀어 놓고 야경 보면서 스치듯 지나가는 봄을... 거제도의 봄을... 남도의 봄을... 그리하여 봄을... 겨우 오십번째의 봄을 느껴봅니다.



다시 거제의 화창한 새 날이 밝았습니다.



점점 편해 지는데 마음과 정성은 팍팍한 아침을 먹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가지고 있던 포인트 탈탈 털어 다음을 기약하며 달달한 기억을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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