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풍경

상큼한 봄 향기가 묻어나는 주말 늦은 아침... 그동안 고이 모셔 뒀던 자전거를 꺼내 겨우내 쌓였던 먼지를 털어 내고 동네 자전거포에 들러 정비를 마친 후 제법 먼 길을 떠납니다.



몇 달 만에 타는 자전거라 그동안 말랑말랑해진 전립선이 걱정되긴 하지만, 오늘은 욕심 없이 느긋하게 이곳저곳을 돌아볼 예정입니다. 영주를 출발 무섬마을을 거쳐 영주, 봉화, 안동으로 갈라지는 예고개에서 봉화로 봉화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옛길을 따라 돌아올 예정입니다. 전체 거리는 65km...



영주시에서 무섬마을로 이어지는 자전거 전용도로에 쉬어갈 수 있도록 아담한 쉼터를 마련해 놓았네요. 그래 세금은 이렇게 의미 있게 쓰라고 내는 거다.



주말 무섬마을은 봄을 맞아 단체관광 온 여행객과 가족 단위 행락객, 눈꼴 사나운 연인들로 북적일 게 뻔하니 패스하고 바로 영주댐으로 직진...



영주댐 공사가 시작된 후 내성천은 예전 아름다운 모습을 잃었습니다. 전엔 백지장 같은 백사장이 온통 강을 뒤덮어 밤에도 하얗게 빛이 났는데 이젠 공사로 인해 쓸려 온 굵은 모래에 잡초마저 무성해 과연 여기가 그토록 눈부시게 시리던 내성천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몰라보게 변해버렸습니다.



몇 달 전부터 목디스크가 심해 왼쪽 팔이 저리는 증상이 생겼는데 허리를 숙이고 목을 들어 타야 하는 로드 자전거의 특성상 목에 심한 압박이 가해져 왼쪽 팔에 감각이 무뎌지네요. 여기서 고마 돌아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합니다.



자연을 훼손하는 개발은 양날의 검 같은 것입니다. 얻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잃는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얻는 것과 잃을 것을 견주어 얻는 것이 더 많다면 자연을 덜 훼손하고 개발이 되도록 고심에 고심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주댐은 내가 보기엔 전혀 고민한 흔적이 없고 전 미국 대통령인 루즈벨트의 행적처럼 그냥 땅을 팠다가 다시 되메워도 경기는 살아난다는 전형적인 노가다 삽질 논리로 만들어진 게 분명합니다.   



댐 하류엔 오토캠핑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둘러보니 규모가 상당합니다. 댐이 완공되면 오픈할 것 같은데 나도 한 번쯤 이용하겠지만, 졸지에 정든 고향을 등져야 하는 실향민의 슬픔과 고향에 대한 연민이 서린 곳에서 과연 캠핑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는지...



댐 둑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놨습니다.



1조 838억 원의 혈세가 투입된 영주댐은 높이 55.5m, 길이 400m 총저수용량 1억8천100만 톤 규모의 다목적 댐입니다. 2013년 완공이 목표였으나 각종 비리와 안전성 논란에 공사가 연기되어 올해 담수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백리 내성천이 휘감고 돌아 가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곳이 물에 잠겨 사라진다니 내 고향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산 중턱을 가로질러 새로 뚫은 길 한쪽에 자전거 전용 구간도 마련해 놓았네요.



안동, 봉화 방면으로...



예전에 틈나면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곳인데 이제 담수가 시작되고 물이 차면 전혀 새로운 풍경이 되겠네요. 그렇게 익숙했던 것은 쉽게 잊히고 새로운 기억이 새겨지겠지요.



슬슬 전립선에 마비가 옵니다.



예고개 도착... 이곳 지명이 예고개인데 이정표에는 옛고개라 적혀있습니다.



출발할 때 봉화 할매 곰탕집에 곰탕 먹으러 간다고 페북에 사진을 올렸더니 할매 곰탕집 불에 타 없어졌다는 댓글에 여기서 대충 점심을 때워야 하는데 여긴 내가 혐오하는 음식 중의 하나인 닭발집 밖에 없네요.



주유소 앞 기사식당에 들러 6,000 원짜리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반찬은 정갈하고 가짓수도 많지만, 된장찌개는 완전 염전 수준입니다.



뭘 보냥~



밥을 먹었으니 힘을 내 봉화로 이동합니다. 내가 어렸을 적 대구 자췻집과 고향을 흙먼지 폴폴 날리는 이 길을 따라 한 해 네 번 지나다녔습니다. 고향으로 갈 때는 한껏 들떴지만, 다시 돌아올 땐 눈물을 훔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하던 어린시절 슬픔과 설렘이 교차하던 길을 자전거로 달리니 오만 생각이 다 떠오르네요.



페친의 고향 녹전 이정표를 뒤로하고 상운면에 도착했으나 체력도 맨털도 급 방전...



내리막을 50km 넘는 속도로 내려올 때 움푹 파인 도로에 부딪혀 자전거 앞 휠 상태도 매롱...



잠시 쉬다가 다시 이동합니다. 긴 겨울잠을 깬 농촌은 파종이 한창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지금쯤 밭에 계시려나... 아~ 어머니 칠순이라 홍콩 여행 가셨지...



좀 전 충격으로 앞 휠뿐만 아니라 클릿 페달에도 충격이 가해졌는지 클릿이 자꾸 풀리네요.



봉화를 지나갑니다.



시내버스도 아닌데 간이 버스 정류장마다 들러 쉬어갑니다.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기록을 보니 평속은 동네 김 여사, 김 씨 아저씨 수준이고 걸린 시간은 세발자전거 쯤 되네요. 어쨌든 첫 중거리를 달렸으니 올해도 부지런히 이곳저곳 많이 쏘다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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