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란했던 하루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갈 때는 잘 챙겨가지만 돌아올 땐 어김없이 어디에 두고 온다. 운이 좋아 두고 온걸 알고 찾아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잃어버리고 만다.

특히 등산을 가서 잃어버리고 온 물건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매번 꼼꼼히 점검을 하는데 그래도 칠칠하지 못하게 산중에 두고 오거나 길에 흘리거나 한다.

이년 전 황장산에서는 장갑을 잃어버렸고, 작년 춘양에서 태백산까지 등산 후 돌아오는 시외버스에 고어텍스 모자를 두고 와서 버스회사, 버스기사, 버스 청소하는 사람까지 수소문하여 통화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서울 사는 동생과 춘양 구룡산에 갔다가 비니를 동생 차에 두고 와서 택배로 받은 적이 있고, 핸드폰은 늘 차에 두고 내려서 밤중에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올해 고치령에서 죽령으로 넘어갔다가 죽령에서 친구 차를 타고 다시 고치령으로 돌아와 내 차로 집에 왔는데 다음 날 아침 고글이 없어져 온사방 찾으러 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며칠 후 친구가 차 앞좌석 밑에 있는 걸 발견하고 가져 다 준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어떻게 거기에 들어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 고글을 오늘 잃어버렸다. 그래서 마음이 몹시 심란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국망봉이나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초암사로 출발했다. 기왕 가는 길에 초암사에 차를 두고 국망봉에 올랐다가 비로봉으로 간 다음 비로사로 하산하여 비로사에서 초암사까지 나 있는 소백산 자락길을 따라 다시 초암사로 돌아오기로 했다. 5시간에서 5시간 30분 정도 예상하고...

초암사에 도착하니 10시 햇볕이 따갑긴 해도 계절이 가을로 접어든 터라 그렇게 덥지는 않았다.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평소 같으면 2시간은 족히 걸릴 초암사에서 국망봉까지를 1시간 45분 만에 올랐으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등산 전날 술을 마시지 않은 몇 안 되는 날이었기에 특히 몸이 가벼웠다. 국망봉에서 비로봉 가는 길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 덥지 않아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사진도 찍고 집사람에게 문자도 보내고 그렇게  즐겁게 가다가 비로봉을 약 0.8Km를 남겨두고 잠시 앉아 쉬는데, 뭔가 허전해서 이리저리 살펴보니 배낭 맬방 고리에 걸어둔 고글이 보이지 않는다.

배낭 맬방 고리에 끼워 놓으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도저히 빠질 수 없는 구조인데 언제 어떻게 빠졌는지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고글을 찾으러 왔던 길을 찬찬히 살피며 돌아갔다. 가던 도중에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고글을 봤느냐고 물어봤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결국, 국망봉 근처까지 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비로봉 근처까지 가보았지만, 풀숲 깊숙이 떨어졌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국망봉과 비로봉을 왔다 갔다하는 사이 시간은 두 시가 넘었고 배도 고프고, 김도 다 빠져서 비로봉에서 비로사로 하산하는 걸 포기하고 다시 국망봉으로 해서 초암사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점심으로 사간 김밥을 먹다 보니 꾸역꾸역 먹는 내 모습이 하도 한심해보여 몇 개 먹다가 다시 배낭에 싸 말아 넣었다.

초암사까지 속으로 병신아 병신아를 연신 되뇌며 내려왔다.

잃어버린 고글은 몇 년 전 집사람이 선물로 사준 것이다. 올해는 꼭 선글라스를 사야지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다녀도 정작 자기는 못 사고 바람이나 햇살에 쉽게 눈물이 마르고 시려 고생하는 나를 위해 사준 것이다.

집사람은 "그럴 수 있지 뭐 너무 심란해 하지마" 하지만 몹시 우울하다. 당분간 등산을 끊든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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